도미야마가 <히루코와 인형극–바다 방랑자의 이야기>를 완료했을 때, 그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주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큐 지역에서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다. 약 18,456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지역 사회 전체가 떠내려갔다. 그 사건의 공포는 도쿄 전력 회사 (TEPCO)가 소유한 후쿠시마 제 1 발전소 현장에서 나란히 배치된 원자로 3개의 통제되지 않은 용융이라는 인간에 의한 재난과 복합되었다. 쓰나미는 유지보수를 위해 가동을 중단한 3개 원자로와 함께 원자로들을 침수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시기적절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효과적인 현대 사횔를 평판을 누려왔다. 2011년까지 이어진 20년 동안의 저조한 경제 성과 때문에 국내외적 이미지가 훼손되어 있었어도, 트리플 재난을 대응하는 TEPCO와 중앙 정부의 냉담함 혹 무능함에 준비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력회사가 쓰나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부적절하게 대응한 뒤 문제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곧 이어 밝혀졌다. 그 이후 국가 정부는 도호쿠 시민들의 건강과 복지보단 TEPCO를 지키고 방사능의 영향을 무시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듯 했다. 위험 또한 해결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현재에도 TEPCO는 원자료 내의 연료봉 회수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여전히 방사능 잔해를 제거하고 있으며, 여전히 하루에 수백 입방미터의 방사능 물을 만들어 로드를 냉각시키고 있다.이 물은 부분적으로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현장에 저장되어 있지만, 계속 증가하는 수백만 갤런의 물이 태평양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육지로부터 그 오염수를 격리하는 계획이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도미야마가 말하길, “2011년 3월 11일 …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모든 시선이 일본에 쏠렸다. 나는 도쿄에서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 뉴스를 봤다. 진도 9의 지진의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했다. 땅이 흔들리고, 해류가 역류하여 육지를 삼켰다. 쓰나미는 600km의 해안선을 폐허로 만들었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종말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다로부터의 묵시>의 주제였고, 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즉, 도미야마의 대표 주제들이 새롭고 비극적인 현대적 관련성을 획득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일본 시민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게다가 이 참사는 일본 기술의 정교함과 국가 공동체를 찬양하는 너무 열성적인 자기 과시적 언변 때문에 발생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대규모 피해는 아니었지만 냉담한 무능함을 보여줬던 이전 핵 재난에 더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 그들의 안일함과 이에 대한 결과가 도미야마가 92세일 때 완성한 그의 2014년 작품, <바다로부터의 묵시>의 주요 주제다. 

도미야마는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그림과 텍스트만을 사용할 뿐만이 아니라 일본 민간 전통, 아시아 주요 종교, 근대성의 세계적인 아이콘, 뉴스 헤드라인에서 깊은 상황적 의미를 참조했다. 이 시리즈의 중심은 4개의 대형 유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후쿠시마의 망가진 원자로들 중 핵연료 폭발로 지붕이 날아간 원자로를 그린 <닛폰: 원전>가 그 중 하나다. 비록 쓰나미가 닥쳤을 때 4번 원자로가 폐쇄되었지만, 1,770개의 강력 방사능 연료봉이 최상층 냉각 수영장에 적재되어 있는 제너럴 전기 히사 원자로 설계가 세계적으로 흔해도 부적절하게 고안되어 보인다.

Japan: Nuclear Power Plant | ニッポンー原爆 (2011)
닛폰: 원전 | Japan: Nuclear Power Plant | ニッポンー原爆 (2011)

<바다의 기억> 이후 그의 모든 작품들처럼, 도미야마는 매번 새로운 신들을 그려내며 인간과 신들 사이의 교류라는 은유를 채택했다. <바다로부터의 계시>의 4개 중 2개의 작품은 바다와 천둥의 신, 후진과 라이진을 보여준다. 이 한 쌍의 초자연적 존재들은 신토 신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범국가적 아시아 신앙과 연결된다. 가장 최근에는 온라인 비디오 게이머들이 이러한 신들을 그들의 창조적 행위에 접목시켜 2푸진과 라이진에 대한 21세기 국제적 인지도를 넓혔다. 도미야마의 작품에서 후진은 세슘-137로 장식된 예쁜 분홍빛 벚꽃 구름을 관장하고, 라이진은 자신의 천둥번개를 던지며 폭풍우가 치는 하늘을 가로질러 북을 치고 있다. 

Fukushima Spring of Caesium-137 | フクシマー春セシウム137 (2011)
후쿠시마: 봄, 세슘 137 | Fukushima Spring of Caesium-137 | フクシマー春セシウム137 (2011)
Crisis: Prayer for Sea and Sky I クラシス:海と空への祈り (2012)
크라이시스: 바다와 하늘을 향한 기도 | Crisis: Prayer for Sea and Sky I クラシス:海と空への祈り (2012)

<바다로부터의 묵시>에는 주로 회색, 검은색, 그리고 갈색으로 된 14개의 콜라주뿐만 아니라 똑같이 <바다로부터의 묵시>라고 불리는 다카하시 유지와 협업하여 제작한 새로운 DVD가 포함된다. 이 콜라주는 그의 과거 작품에서도 다뤘지만 더 중점적으로 환경 파괴라는 주제를 발전시킨다. 죽은 물고기와 나방의 분류학적 표현은 그의 목표가 오늘날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에서만이 아닌 모든 현대 기술에서 나타나는 오만함임을 보여준다. 도미야마는 이 주제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컴퓨터 마더보드와 여러 핸드폰의 내장을 분해하여 콜라주와 그림에 붙였다. 

To The Dead Butterfly: Fukushima 5, Poem to the Butterfly I 死せる蝶に福島第5 蝶の詩 (2013)
죽은 나비에게: 후투시마 5 마법사의 제자 1 | To The Dead Butterfly: Fukushima 5, Poem to the Butterfly I 死せる蝶に福島第5 蝶の詩 (2013)
To The Dead Butterfly: Fukushima 1 | 死せる蝶に (2013)
죽은 나비에게: 후쿠시마 1 | To The Dead Butterfly: Fukushima 1 | 死せる蝶に (2013)
To The Dead Butterfly: Fukushima 4 | 死せる蝶に: 福島 4 (2013)
죽은 나비에게: 후쿠시마 4 나비의 시 | To The Dead Butterfly: Fukushima 4 | 死せる蝶に: 福島 4 (2013)

그러나 단연코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주장은 죽음의 필연성과 더 나아가 어쩌면 “현대문명의 종말”까지에 대한 도미야마의 직접적인 명상이다. 그는 두가지 방법으로 이 주제를 표현하는데, 하나는 그의 작품을 현대 유럽 예술 전통의 핵심 인물들을 연결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철학적이고 국제적인 아시아 전통인 불교에 뿌리를 깊게 두는 것이다.

도미야마는 일본어로 읽은 “어려운 교차로 앞에 서면, 괴테의 이 시가 생각난다”고 말한다. 그의 집중은 치명적인 불꽃 속으로 똑바로 날아드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나비에 관해 얘기하는 마지막 연에 머물렀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는 원래 독일어로 쓰여진 것으로, 몇 가지 방법으로 영문 번역이 됐다. 아래는 로버트 블라이의 마지막 연에 대한 번역의 한글 번역이다.

거룩한 그리움

거리는 당신을 동요하지 않습니다. / 지금, 날아 마법에 도착하고 / 마침내 빛에 미쳐 / 당신은 나비고 당신은 사라졌습니다. / 그리고 당신이 이것을 경험하지 않는 한, 죽는 것과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 / 당신은 이 어둠의 땅에서 단지 불안해하는 손님일 뿐입니다.

 

Revelation from the Sea: Tsunami | 海からの黙示: 津波 (2011)
바다로부터의 묵시: 쓰나미 | Revelation from the Sea: Tsunami | 海からの黙示: 津波 (2011)

이 시리즈에서 도미야마의 가장 강력한 그림은 동서남북으로부터 불교를 보호하고, 인간의 행동을 추적하는 사천왕상의 그림이다. 푸진이나 라이진처럼 다른 종교, 특히 힌두교에도 등장하며, 바람과 비와도 관련이 있다. 도미야마가 죽음을 가장 자세히 설명하고, 인생의 끝을 준비시키는 아시아 종교인 불교를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과거 작품에 나오는 신들은 인간들을 위한 입신이었지만, 불교 신들은 우리를 정죄하고 슬프게 꾸짖는다.더 나아가 도미야마의 비판은 그의 과저 작품에서처럼 전쟁이나 제국주의, 자본주의, 성차별에 향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더욱 정밀하게 다뤄 그의 초점을 불교의 중심 메시지와 일치시킨다. 그는 관객들에게 우리 모두 이 어두운 땅의 음울한 손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