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1950년대 도미야마 다에코는 규슈의 광부들의 삶을 다루는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다. 오늘날 일본에는 운영 광산이 거의 없지만, 1950년대까지만해도 석탄과 금속 채굴은 주요 산업이었다. 광부들은 노동조합을 만든 첫 노동자들 중 하나였으며, 전쟁 이후 노동자의 권리가 더 보호될 수 있도록 새로운 노동 제도를 확립하는 주요 역할을 했다.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광부의 가족들은 부적절한 주거 환경을 자주 받아들여야 했다. 1960년대 국가가 더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광부들은 가장 가난한 일본 시민들로 남아 있었다.

기자 활동 외에도 도미야마는 1951년 작은 구리광산의 유화로 시작하여 광산 풍경화를 그렸었다. 이는 전문적인 화가가 되기 위한 그의 첫 도전이었다. 도미야마는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 안에서 가치를 찾는 방법이라고 시각적 주장을 이미 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미야마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만족스럽게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좌절감을 느꼈고, 이 작업을 완료한 후, 유화를 포기했다. 여기에 세 개의 광산 풍경화가 소개되었지만, 오늘날엔 유화 단색 사진만이 존재한다. 

Hitachi Copper Mine| 日立鉱山 (1951)
히타치 광산 | Hitachi Copper Mine | 日立鉱山 (1951)
Kamioka Mine | 神岡鉱山 (early 1950s)
가미오카 광산 | Kamioka Mine | 神岡鉱山 (1950년대 초)
작은 광산 | “Mine” | 鉱山 (1953)

광산의 사람들

 

1950년대 중반에 도미야마는 석판화에 주력하여, 일본 광산촌 주민들을 결의와 위엄을 겸비한 개인으로 묘사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예술적으로 도미야마는 독일 내전 예술가 카테 콜비츠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이 “일본의 콜비츠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일축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인정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했다. 그는 또한 그의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매우 창의적이며 생산력있는 긴장감 속에서 비롯되었다.

Three Sitting Miners | 座る3人の鉱夫 (1955)
앉아 있는 세 명의 광부 | Three Sitting Miners | 座る3人の鉱夫 (1955)
Old Miner | 老坑夫 (1955)
늙은 광부 | Old Miner | 老坑夫 (1955)

위의 작품들에 대해서 2010년 미시간 대학교의 동아시아 센터에서 출판한 로라 하인과 레베카 제니슨의 “Imagination Without Borders: Feminist Artist Tomiyama Taeko and Social Responsibility”에서 하기와라 히로코가 쓴 “Working on and off the Margins”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The Digital version is fully and freely accessible on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website.